[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이것이 어쩌면 죽음일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물었다.
그리고 말러가 답했다.
KBS교향악단은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708회 정기연주회 메인 프로그램으로 말러 교향곡 4번을 선보였다. 아울러 말러와 함께 낭만주의의 끝자락에서 내용과 규모의 확장을 꾀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와 오페라 살로메 중 일곱 베일의 춤(Dance of Seven Veils - from Salome)을 연주했다.
“이것이 어쩌면 죽음일까”(Ist dues etwa der Tod)?
4개의 마지막 노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다. 4번째 곡인 ‘저녁노을’(Im Abendrot)의 마지막 가사 “이것이 어쩌면 죽음일까?”는 죽음에 앞서 작별을 고하는 작곡가의 심정이나 마찬가지다.
이날 독창자로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아가 미콜라이(Aga Mikolai)는 화려함을 지양하고 죽음을 앞둔 작곡가의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했다. 니콜라이는 고음의 강약 조절에서 후륭한 기량을 발휘했다. 호흡은 깊고 안정적이었다. 깊고 안정적인 호흡이 바탕이 돼야만 가능한 테크닉이다. 하지만 담담한 가창에 무게를 준 나머지 간혹 장식음을 평면적으로 처리해 아쉬움을 남겼다.
레비와 KBS교향악단 역시 따뜻한 울림으로 니콜라이의 노래를 반주했다. 하지만 반주라고해서 존재감이 약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이날 KBS교향악단의 현은 정갈했고 목관은 맑았으며 호른은 아련했다.
앞선 연주한 오페라 살로메 중 일곱 베일의 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살로메가 헤롯왕의 생일잔치에서 베일을 하나씩 벗으며 춤을 추는 장면에 등장하는 음악인만큼 관능적인 연주를 선보였다면 4개의 마지막 노래에선 깊고 그윽한 연주로 인생의 황혼을 살고 있는 대 작곡가의 마지막 숨결을 노래했다.
▲제708회 정기연주회 리허설 스케치. 사진출처 : KBS교향악단 페이스북
|
“우리는 삶의 한 가운데서도 죽음 속에 존재한다”
말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다. 말러 교향곡 4번은 죽음을 향한 말러의 시작이 그대로 담겨 있다. 죽음 이후엔 천상의 삶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말러 교향곡 4번은 앞서 1부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던지 질문 “이것이 어쩌면 죽음일까?”에 대한 말러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와 말러 교향곡 4번을 연이어 연주한 것은 의도적으로 관객을 죽음에 관한 낭만적 사색으로 이끈 것이라 봐야한다.
말러 교향곡 4번 G장조는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이라고 불리곤 한다. 4악장 소프라노의 노래가 말러의 초기 가곡집 ‘어린이의 뿔피리 노래’(Des Knaben Wunderhorn) 중 천상의 삶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썰매방울 소리로 시작해 목가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지만 텍스트 곳곳에서 말러는 현실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말러에게는 평온한 천상의 삶보다 현실의 고통이 더 큰 의미일 수 있다. 결국 말러 스스로 이 곡을 현실의 고통 가운데서 완성했디 때문이다.
따라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텍스트를 빌어 죽음에 관한 말러의 사유에 관객들을 초대한 것은 말러 교향곡 4번, 나아가 말러의 예술세계에 지극히 근접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연주는 전체적으론 평온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말러의 비틀어진 음형들을 부각시킴으로 죽음에 관한 사유라는 연주회 콘셉트를 드러냈다. 특히 3악장의 경우 느리고 몽환적인 음색의 연주는 마치 삶과 죽음의 희미한 경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삶의 한 가운데서도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sumus)는 말러의 표현처럼.
“천사의 목소리는 관능을 자극한다”
오페라 ‘살로메’는 관능적이다. 헤롯와의 생일잔치에서 일곱 겹의 베일을 하나씩 벗으며 춤을 추는 살로메의 모습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모든 오페라 중에서 가장 육감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관한 진지한 사유로 가득한 이날의 음악회에서 ‘일곱 베일의 춤’이라는 관능적인 음악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적욕망으로 가득한 이 곡조차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말러의 죽에 관한 거대한 사유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단서는 말러 교향곡 4번 4악장 노래의 끝자락에 있다. 이 곡은 “천사적 목소리는 관능을 자극해서 즐거운 모든 것을 깨어나게 한다”(Die englischen Stimmen Ermuntern die Sinnen, Daß alles f?r Freuden erwacht)는 가사로 마무리 된다. 여기서 ‘천사적 목소리’는 4악장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천사적 목소리가 자극하는 관능은 연주회 초반에 연주되 일곱 베일의 춤으로 귀결된다.
죽음에서 부활로 다시 죽음으로
마지막이 다시 처음으로 귀결되는 순환구조는 크게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를 주제로 한 3연작(교향곡 2, 3, 4)에서 살펴볼 수 있듯 말러가 즐겨 사용한 구조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죽음을 향한 말러의 시각에서 기인한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유희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 안에 작곡가들이 평생 동안 고민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는 인류의 지적 유산이기도 하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이날 연주회는 첫 화음부터 마지막 울림까지 온전히 대 작곡가들과의 죽음에 관한 철학적 대화로 승화된 놀라운 순간이었다. 사진제공 : KBS교향악단
< 2016년 7월 26일자 위드인뉴스 기사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