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17-01-06

[리뷰] 순음악적 아름다움이 빛나는 연주 'KBS교향악단 제712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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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므라빈스키(Yevgeny Mravinsky)가 지휘한 일련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때문일까. 우리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연주에서 이른바 러시아의 칼바람을 기대한다. 아울러 드보르자크의 음악에서 흔히 얘기하는 체코의 향토색이 느껴지지 않으면 좋은 연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쿠벨릭(Rafael Kubel?k)의 책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러시아의 칼바람과 체코의 향토색이 느껴져야만 차이콥스키와 드보르자크를 제대로 연주한 것일까. 그 외에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는 걸까. 요엘 레비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KBS교향악단과 상당히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레비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선율이었다.

 

▲레비의 해석은 순음악적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사진: KBS교향악단 페이스북)

 

선율의 보석상자
차이콥스키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당대를 넘어 모차르트와 비견될 정도도 뛰어났다. 익히 알려진 바다. 레비 이전에도 여러 지휘자들이 차이콥스키의 유려한 선율을 활용해 세련된 연주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드보르자크는 어떨까.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은 그야말로 선율의 보석상자”라고 했다. 체코의 향토색에 밀려 주목 받지 못했지만 드보르자크의 음악에도 아름다운 선율이 곳곳에 숨어 있다.

 

대부분의 음악은 선율, 화성, 리듬의 3요소로 이뤄져 있다. 그중에서 선율은 음악을 이루는 첫 번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선율은 음악의 모든 것”이라는 말로 선율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따라서 이번 연주회에서 레비가 선보인 선율에 중점을 둔 해석은 차이콥스키와 드보르자크의 또 다른 특징이며, 가장 순수한 음악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악보의 지시를 정확히 지킨 템포 설정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은 베이스 클라리넷과 파곳의 심각한 서주로 시작한다. 2마디에서 비올라와 첼로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8분 음표를 두터운 보잉으로 연주한다. 작곡가는 ‘Lento lugubre’(느리고 비통하게) 연주하도록 요구하지만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연주는 일반적인 연주와 비교했을 때 다소 빠르단 인상을 주기도 했다.

 

악보를 살펴보면 차이콥스키는 첫 마디에 ‘Lento lugubre’라는 지시어 옆에 ‘♩=50’이라고 빠르기를 직접 표시해 놨다. 이 표시는 4분 음표(♩)를 1분에 50개 셀 수 있는 빠르기로 연주하라는 의미다. 실제로 이 빠르기는 아주 느린 템포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다소 빠르다는 인상을 남긴 레비의 템포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지휘자들이 작곡가의 템포 지시에도 불구하고 초반 한껏 느린 템포로 연주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1악장에서 느리고 비통한 연주로 주인공 만프레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피날레에서 갈등이 해소되며 카타르시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정서적 고양감을 얻기엔 수월하지만 지나친 감정 표현으로 도입부와 피날레 사이의 악상에 왜곡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이날 연주에서 레비가 정확한 템포로 연주한 것은 피날레의 정서적 고양 외에 다른 것을 준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레하는 첼로의 매력을 선사한 얀 포글러 (사진: 얀 포글러 페이스북)

 

한층 밀도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현
4악장에 들어서자 레비는 팀파니에게 훨씬 과감한 연주를 주문했다. 전체적인 소리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두터운 KBS교향악단의 음향을 바탕으로 뚜렷한 다이내믹을 만들기 위해서다. 1년 전 KBS교향악단은 700회 정기연주회를 맞아 말러 교향곡 2번을 무대에 올렸다. 당시 평자는 KBS교향악단의 현은 매끄럽지만 소리의 밀도가 다소 부족해 피날레에서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한 바 있다. 1년이 지난 현재 KBS교향악단의 현은 당시에 비해 훨씬 밀도가 높고 무게감 있는 소리로 강렬한 다이내믹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은 상당히 완성도 높은 만프레드 교향곡을 들려줬다. 하지만 어딘가 러시아보단 독일 교향곡 같은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 음악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음악학자 제레미 지프먼(Jeremy Siepmann)은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이란 책에 “그(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동성애 음악도 아니고 사회주의 음악이나 부르주아 음악도 아니며 근본적으로는 러시아 음악도 아니다”라고 썼다. 어쩌면 차이콥스키의 음악에서 러시아의 칼바람은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순음악적 접근을 시도한 레비의 연주가 궁극에서 벗어났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상쾌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첼로
만프레드 교향곡에 앞서 레비는 첼리스트 얀 포글러(Jan Vogler)의 협연으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무대에 올렸다. 포글러의 첼로는 텁텁함을 걷어낸 상쾌한 음색으로 선율을 노래하고 오케스트라 역시 그에 화답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드보르자크는 첼로에게 과감한(risolute) 연주를 주문한다

 

클라리넷, 파곳,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저음악기로만 구성된 도입부는 우리는 느리고 육중한 연주로 주로 접했다. 하지만 레비는 이번에도 약간 빠른 연주를 들려줬다. 작곡가가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로 빠르기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알레그로는 이탈리아어로 본래 ‘유쾌하게’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도입부를 육중한 음향으로 연주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은 87마디의 긴 서주를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교향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울러 서주가 긴만큼 첼로의 도입 역시 인상적이다. 드보르자크는 이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에겐 ‘즉흥연주처럼’(Quasi improvisando) 연주하도록 했다. 그리고 첼로에겐 ‘과감한’(risolute) 연주를 주문했다. 특히 형악파트의 경우 같은 음정을 트레몰로로 연주하도록 하고 있어 첼리스트가 얼마든지 템포를 변화시키더라도 손쉽게 대응하도록 했다.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휘자는 81마디부터 템포를 늦춰 첼로가 마음껏 연주하도록 배려한다. 하지만 레비는 특별히 템포를 늦추지 않았다. 포글러 역시 특정 음표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고 정박자대로 치고 나가는 연주를 선보였다. 표면적으론 박자대로 연주하는 고지식한 연주처럼 보이지만 상쾌한 음색으로 질주하는 연주는 정서적 측면에선 일정 부분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을 담고 있었다.

 

KBS교향악단 제712회 정기연주회
11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요엘 레비
협연: 얀 포글러
연주: KBS교향악단

 

프로그램
차이콥스키: 만프레드 교향곡 op. 58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B단조 op.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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