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17-07-07

[리뷰] 느린 템포,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다, KBS교향악단 제719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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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느린 템포,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다, KBS교향악단 제719회 정기연주회


[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요엘 레비는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 듯했다.

1악장을 여는 바이올린의 극도로 여린 트레몰로와 3악장을 시작하는 현악기의 떨림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즉, 레비는 브루크너가 쌓아올린 구조적인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는 브루크너 구조미의 핵심인 대위법을 드러내기 위해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를 취했는데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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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레비는 브루크너의 구조미를 전면에 드러내고자 했다 (사진: KBS교향악단)
 

극도로 여린 브루크너 개시
1악장을 여는 바이올린의 트레몰로는 들릴 듯 말 듯 여렸다. 이만큼 섬세하고 여린 브루크너의 개시는 흔치 않다. 연주가 진행되며 레비의 지휘에 맞춰 오케스트라의 음량은 서서히 커졌다. 그러나 레비는 도입부의 느린 템포를 고수했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연주에 참여하는 34마디를 기점으로 템포가 빨라지는 해석을 들려주는 지휘자도 많지만 레비는 템포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사실 레비가 연주를 위해 선택한 로베르트 하스(Robert Hass)의 에디션을 기준으로 악보엔 조금씩 점점 세게(poco a poco crese) 연주하라는 지시 외에 템포에 대한 지시는 찾아볼 수 없다.

 

1악장에서 처음으로 템포가 변한 곳은 121마디 지점이었다. 레비는 즉시 템포를 늦추라(ritenuto)는 지시에 따라 121, 122마디의 템포를 크게 떨어뜨린 뒤 123마디에서 145마디까지 템포를 다소 빠르게 당겼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브루크너 특유의 리듬이 전면에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셋잇단음표와 분할 박자들로 이뤄진 리듬은 브루크너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레비는 악보에 지시된 템포 변화 외엔 여유로운 템포를 고수했다.

 

소리의 자음과 모음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브루크너가 존경하던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고 영감에 휩싸여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브루크너가 2악장을 작곡하던 1883년, 펠릭스 모틀(Felix Mottl)에게 쓴 편지를 보면 “머지않아 그분이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을 때 아다지오의 단조 주제가 떠올랐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때 브루크너가 떠올린 2악장의 주제 선율은 바그너가 그의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사용했던 ‘바그너 튜바’의 어두운 음색으로 표현되고 있어 바그너를 향한 애도의 느낌은 더욱 강조된다.

 

2악장이 바그너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일까. 레비는 2악장에서 한층 더 템포를 떨어뜨리고 미시적(微視的) 시각으로 부선율과 대위법을 어루만졌다. 느린 템포 속에서 브루크너의 정교한 선율은 더욱 명상적인 이미지를 띠었다. 하지만 바그너의 죽음에 대한 애절한 슬픔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프레이징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모음만 있고 자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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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리듬은 치밀하고 정교하다


 
말에만 자음과 모음이 있는 게 아니다. 음악에도 있다. 소리는 발생, 지속, 소멸의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소리의 첫 머리 즉, 발생 지점의 악센트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아아’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소리는 모음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첫머리에 어떤 자음(악센트)이 오느냐에 따라 소리의 인상이 달라진다. 그런데 레비의 연주 특히 2악장에선 첫 머리의 자음을 의도적으로 약하게 또는 지워진 인상이 들었다.

 

이렇게 연주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리의 잔향 때문이다. 소리의 첫 머리에 자음이 강하게 들어가면 이전 프레이즈의 잔향이 뭉개질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계류음 때문이다. 계류음은 말 그대로 화성에서 화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음이 늦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세 성부가 ‘도미솔’에서 ‘솔시레’로 화성이 진행됐는데 ‘도’만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솔도레’라는 불협화음이 생긴다.

 

브루크너 교향곡처럼 치밀한 대위법에 따라 진행되는 곡에선 계류음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 레비는 이런 계류음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충돌신경 쓰인 모양이다. 소리 첫 머리의 자음을 의도적으로 지웠다. 그렇게 연주하면 계류음을 부드럽게 감싸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협화음이 꼭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불협화음은 긴장을 낳고 긴장을 해결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윽고 불협화음이 해결될 때 카타르시스를 낳는다. 레비는 이번 연주를 위해 로베르트 하스가 펴낸 에디션을 사용했다. 브루크너 교향곡엔 크게 두 가지 에디션이 존재하는데 앞서 언급한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Leopold Nowak)가 그것이다.

 

두 에디션의 차이는 2악장 클라이맥스에 있는데 하스 에디션엔 타악기가 등장하지 않고, 노바크 에디션엔 타악기(팀파니, 심벌즈, 트라이앵글)가 등장한다. 그런데 레비는 기본적으로 하스 에디션을 선택했음에도 타악기를 삽입해 연주했다. 클라이맥스에서 긴장감을 단번에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오히려 불협화음의 긴장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레비의 의도는 명확했다. 계류음의 충돌을 최소화시키고 이른바 브루크너 사운드가 간직한 종교적이며 명상적인 느낌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희석시킨 불협화음은 긴장을 낳지 못했고 클라이맥스에서 카타르시스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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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의 두터운 음색은 브루크너 교향곡과 좋은 상성을 이룬다 (사진: KBS교향악단)


전반부의 변주로서의 3, 4악장
브루크너는 3악장 첫 머리에 매우 빠르게(Sehr schnell) 연주하라는 지시어를 삽입해 놨다. 그렇지만 레비의 연주는 오히려 스케르초 악장치곤 느리게 연주했다. 레비가 이 곡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해석했다고 평자가 생각하는 이유다. 이 시각에 따르면 3악장 현악기의 떨림은 1악장 트레몰로의 변주다. 그러므로 템포를 아주 빠르게 당기지 않은 것이다.

4악장이 초반에 경쾌하게 진행되는 탓에 2악장의 변주라는 느낌이 희석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에 등장했던 주제나 비슷한 음형들이 다시 나타나 결말을 맺는 구조를 생각한다면 레비의 시각은 충분히 설득력을 얻은 것으로 본다.

 

KBS교향악단 제719회 정기연주회
일시·장소: 6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요엘 레비
협연: 파질 세이
연주: KBS교향악단


프로그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 KV 488
파질 세이: 알라 투르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론도에 대한 재즈와 환상곡 (피아노 앙코르)
파질 세이: 블랙 어스(Black Earth, 피아노 앙코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에디션: R. 하스)


권고든 withinnews@gmail.com

 

원문 출처: http://blog.naver.com/withinnews/221040855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