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BS교향악단 제802회 정기연주회 말러교향곡 제3번
“100분간의 흔들림없는 피에타리 잉키넨의 지휘”
5월26일(일)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KBS교항악단의 응집력있고 흔들림없는 연주력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이는 5월26일 일요일 오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KBS교향악단 제802회 정기연주회 말러교향곡 제3번 연주회를 통해서 명확히 선명해졌다.
연초 모 클래식 월간지 선정 클래식 관객선호도에서 KBS교향악단은 적은 마진으로 국립심포니에 이어 3위에 오르긴 했지만 이런 랭킹 순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듯 KBS교향악단의 오랜 저력에서 뿜어나오는 말러사운드가 1시간40분에 걸친 말러교향곡 제3번을 통해 유감없이 분출됐다.
“100분간의 흔들림없는 피에타리 잉키넨의 지휘에다 트럼펫과 트롬본, 팀파니의 에너지가 넘쳤다”는 말러리안 지휘자 진솔은 이날의 연주회를 본 소감을 필자에게 이렇게 밝혔는데 보통 말러교향곡의 연주 인기빈도가 말러교향곡 제1번 ‘거인’, 제2번 ‘부활’, 천상에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제4번, 아다지에토로 유명한 말러교향곡 제5번, 말러교항곡 제9번등에 집중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KBS교향악단의 이번 말러교향곡 제3번 연주회는 관객으로 하여금 말러교항곡 이해의 진폭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KBS교항악단의 응집력있고 흔들림없는 연주력 훨씬 좋아졌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3번은 총 6악장 구성에, 평균 연주시간이 1시간 40분에 육박하는 대곡이라 교향곡 사상 가장 연주 시간이 긴 곡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오랜만에 워낙 응집력있고 흔들림없는 KBS교향악단의 연주를 이끈 피에타리 잉키넨의 지휘에 연주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말러교향곡 제3번의 훌륭한 연주를 접했다는 기분에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의 반응은 상상외로 매우 뜨거워 근래에 보기 드문 꽤 오랜 커튼콜 시간들이 무대에서 펼쳐졌다. 기대한 것 이상의 연주를 KBS교향악단이 펼쳤다는 것에 너무 잘한다는 관객들의 평이 귀에 많이 들렸다. 여기에는 스키 낙상 사고로 그간 무대에서 의자에 앉아 지휘하던 피에타리 잉키넨의 위기에 찬 전투적 지휘가 한몫을 했고 “깊고 깊은 영원을” 노래한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오카 폰 데어 다메라우도 기대이상의 열연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해보고 싶다. 특히 다메라우는 처음 내한공연을 펼치는 것임에도 동시대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하면서 강한 중음역대와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인물과 가사의 개성을 살리며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는 평을 받을 만 했다.
KBS교향악단의 말러교향곡 제3번은 깊은 잠에 취해있는 목신 판(Pan)을 깨우듯 8대의 호른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소리를 내며 거대한 교향곡이 시작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우렁찬 행진곡은 당대의 청중들에게 조잡함과 비루함을 벗어던지라고 외치는 것 같았을 것이다. 말러교향곡 제3번은 여섯악장의 지시어와 악장마다의 부제가 따르는데 행진곡이 끝나면 <들판의 꽃들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드럽고 우아한 2악장이 시작된다.
말러의 연가곡 중에서 <여름에 헤어짐>을 바탕으로 한, 스케르초를 닮은 3악장은 <숲의 동물들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다양한 악기들이 펼치는 넓은 음역대의 소리, 다양한 아티큘레이션과 주법등으로 음악은 우리를 환상속 사파리로 안내하는 것 같다는 평을 듣는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4악장 <사람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알토 독창자가 니체의 글을 낭독하면서 시작된다.
KBS교향악단의 이번 말러교향곡 제3번 연주회는 메조 소프라노로 출연한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오카 폰 데어 다메라우의 동시대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한 호기심어린 관객들의 흡인력도 연주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발행하는 음악월간지 아르테 창간호는 5월9일 독일 뮌헨에서 있었던 뮌헨필의 말러 연주중 ‘놀라움을 안겨준 다메라우의 가창’이란 기사에서 가장 먼저 연주된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에서 등장한 메조 소프라노 오카 폰 데어 다메라우의 가창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안겨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고 필자는 적었다. 1곡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부터 탁월한 시어의 조탁과 성악적 컨트롤을 통해 빛남과 어두움의 공존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시작해 마지막 강력한 5곡 ‘이런 날씨에’까지 음악적 감흥 이상의 강력한 호소력을 발산했다는 공연리포트였다.
이런 다메라우의 면모를 기대하던 차에 이번 KBS교향악단과의 말러교향곡 제3번에서 다메라우는 신비로운 밤의 산책을 노래하고 이어 5악장에서 다메라우가 KBS교향악단 유트브 매튜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4악장과 대비되는 ‘딩동 딩동(원어 가사로는 Bimm Bamm) 어린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종소리와 함께 천상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음악이 시작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5악장은 <세 천사가 노래했네>라는 가사에 곡을 붙인 것으로 어린이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며 알토 독창자는 <천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교향곡은 많은 악장들의 차이점과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는 특별한 말러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나타 형식의 첫 번째 악장에 이어 세 번째 악장은 말러의 초기 작품 《여름의 안식처》(Abl?sung im Sommer)의 주제이다. 이어 네 번째 악장에서는 알토 독창이 나오는데, 이 가사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악장의 합창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에서 따온 것이다.
“잉키넨의 위기에 찬 전투적 지휘와 메조 소프라노 다메라우의 열연!”
앞서 언급한 대로 말러교향곡 연주빈도는 말러교향곡 제1번 ‘거인’, 말러교향곡 제2번 ‘부활’, 천상의 삶을 노래하는 말러교향곡 제4번, 알마에게로 향하는 러브레터 ‘아다지에토’로 유명한 말러교향곡 제5번, 삶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말러교향곡 제9번등이 연주인기 빈도에서 앞선다.
말러교향곡들을 번호순으로 살펴보자면 제1번은 말러의 교향곡들 가운데서도 이해하기 쉬운 곡으로 평가되며, 때문에 말러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자주 추천되는 곡이다. 1888년에서 2년간, 말러는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이 곡을 완성시켜 초연을 자신이 직접 지휘했다. 당시 그는 독일 낭만파 작가인 장 파울에게 심취되어 있었고, 그의 『거인』이라는 시의 제목을 본떠서 자신의 교향곡 제1번도 ‘거인’이라 했다. 그러나 말러자신의 음악성은 대단히 가요적이었고, 젊음과 패기에 찬 이 대곡도 ‘거인’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 경향을 띠고 있다.
말러교향곡 제2번 ‘부활’은 구스타프 말러가 1888년과 1894년 사이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이다. 이 작품은 말러가 살아있던 동안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었다. 말러가 사후세계와 부활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담은 주요 작품이기도 하다. 또 말러는 베토벤의 영향을 받아 교향곡에 성악을 주입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 첫 번째 교향곡이 〈부활〉이다. 베토벤이 〈합창〉에서 환희와 평화를 외쳤다면 말러는 〈부활〉에서 부활의 합창을 불러 인간이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외쳤다.
말러교향곡 제4번은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 길이도 가장 짧고, 멜로디도 간결한 편인 데다가 분위기도 즐겁기 때문에 말러 입문곡으로 자주 추천되곤 하는 작품. 특이하게도 4번 교향곡은 말러가 3번 교향곡에서도 활용한바 있던 1892년에 작곡된 가곡 '천국의 삶'의 멜로디를 단순히 사용한게 아닌, 그 멜로디를 발전, 확장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또한 4번 교향곡에선 '천국의 삶'의 주제가 마지막 악장에 쓰인다. 실제로 작곡자인 말러 자신도 "마지막 악장은 피라미드의 꼭대기"라고 말하며 마지막 악장의 '천국의 삶'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함을 역설했다.
말러의 교향곡 5번에 이르게 돼서는 이전의 4개의 교향곡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교향곡 1번 "거인"과 "뿔피리 3부작"에 해당하는 2,3,4번 교향곡들은 당초에는 표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교향시적인 면모가 존재했다. 또한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많은 소재들을 가져왔고, "뿔피리 3부작"은 모두 성악이 가세했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아마도 말러의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을 꼽으라면 역시 이 4악장 아다지에토일 것이다. 다른 악기는 모두 쉬고 오직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매우 아름다운 악장이며 '현과 하프를 위한 무언가라는 평을 받는다.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은 죽음에 관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필악보에 남아있는 수수께끼 같은 메모 덕분이다. 1악장 267마디에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O Jugendzeit! Entschwundene! O Liebe! Verwehte!”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독주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나오는 434마디에는 “안녕! 안녕!(Leb'wol! Leb' wol!)”이라 적혀있다. 이별을 암시하는 말러의 메모로 인해 후대의 여러 음악가들은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죽음의 교향곡’으로 해석했다. 이런 말러 인기교향곡들의 연대기적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KBS교향악단의 말러교향곡 제3번은 확실히 관객들로 하여금 말러교향곡 이해의 진폭에 크게 기여한 연주회로 기억될 만 하다.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출처: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6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