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 2018-07-05

[인터뷰] 바리톤 사무엘 윤 <레퀴엠이 슬픔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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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윤은 "레퀴엠이 슬프믕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사진: 사무엘 윤 페이스북)

 

“유학시절 목격한 사라예보의 참혹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사무엘 윤은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라예보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평소라면 그냥 묻어 뒀겠지만
브리튼이 <전쟁 레퀴엠>에서 전하고자 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노래하기 위해선 필요한 일이었다. 
 
“마치 전쟁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라예보까지 군용기를 타고 갔고, 연주회장까지
폭격 현장 사이로 난 길을 지나갔다.”


당시 사무엘 윤은 섭씨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한국은 IMF로 신음 중이었고, 사무엘 윤도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라 스칼라 극장’ 합창단원으로 학비를 마련하던 중이었다. 도저히 연주를
할 수 없는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노래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레퀴엠은 슬픔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인터뷰는 KBS교향악단의 제731회 정기연주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6월 28일 KBS교향악단 사무국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사무엘 윤과 나눈 일문일답.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연주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첫인상이 궁금하다.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악보를 펼치고 처음 받은 인상은 굉장히 오묘하고 독특한 작품이란 점이다.
레퀴엠이지만 영어 가사이기도 하지만 작곡가인 브리튼이 흥미로웠다. 그는 반전주의자이면
동성애자였다. 그리고 레퀴엠을 작곡했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엔
여타의 레퀴엠에서 볼 수 있는 구원의 메시지가 찾기 힘들다. 그저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브리튼은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많다. 그런데 관객의 대부분은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사무엘 윤 님 역시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닌데 전쟁의 참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유학을 이태리 밀라노에서 했다. 당시 한국은 IMF로 신음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학비가 부족해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라 스칼라 극장 합창단원으로 취직해 돈을 벌었다. 그때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봉을 잡고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사라예보에서 평화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사라예보까지 군용기를 타고 이동하고 또 연주회장까지 차로 이동했는데 그 길이 폭격 현장의
한가운데를 지났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현장은 정말 참혹했다.


불이 없어 밤이 그렇게 어두울 수 없었다. 난 깨끗한 물이 없어 병이 났다. 열이 섭씨 40도까지
올라 도저히 연주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보통 연주회라면 모르겠는데 평화음악회라
억지로 무대에 올랐다. 너무 힘들었지만 연주가 마치고 객석에서 하나 둘 울기 시작하는데
나에게도 감동이 전해졌다. 당시 연주한 곡이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었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보며 ‘레위엠이 슬픔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근 한국은 남북회담이 이뤄지고, 북미회담이 성사되고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다양한 일이 있었다. 사무엘 윤 님은 유럽에서 생활하시기 때문에 한국의 이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기회가 많은 듯하다.


회담 소식을 공항에서 들었다. 연주회 때문에 이동하는 중이었다. 참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도 난민 때문에 고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독일 쾰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시리아 난민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주로 교회에서 만났다.

거의 매주 만난 듯하다. 처음엔 그들의 모습이 초라해 잘 몰랐는데 대화를 하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초라한 모습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들 대부분이 의사이며 학자, 교수 같은
이른 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없는 곳에 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

 

<전쟁 레퀴엠>이 전쟁의 참혹함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위로의 노래도 있다고 본다.
예컨대 마지막의 “우리 이제 잠을 잡시다”(Let Us Sleep Now) 같은 가사는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사무엘 윤 님의 시각은 어떤가


물론 브리튼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보통 얘기하는 종교적인
쉼(잠)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우리 삶을 생각해보자. 난 ‘혼돈과 고요’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혼돈 속에 있다가 나만의 고요함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삶은 혼돈과 고요가 공존한다.

서로 다른 두 상황이 바로 옆에 있을 수도 있다. 이번 무대에서 드라마틱한 해석으로 노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브리튼이 전하고자 했던 것처럼 아픔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다. 그러면 그 아픔
바로 곁에 쉼이 있고 구원이 있지 않을까


브리튼은 전쟁의 현실적인 아픔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플 때 아프고 슬플 때 슬픈 것이 이곡의 핵심에 다가선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레퀴엠이 그저 슬픔으로 아픔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다음의 위로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드인뉴스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삶의 어려움(혼돈)을 예술의 고요한 세계 속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나는 평소에도 고용한 곳에서의
휴식을 좋아한다. 여러분도 삶의 혼돈에서 벗어나 고요한 예술의 세계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문 출처 : http://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48&category=150&item=&no=15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