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 2019-08-06

07.27 [연합뉴스] 인간 귀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사치, '구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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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 744회 정기연주회 리뷰

 

'KBS교향악단에 쏟아진 끝없는 갈채'
'KBS교향악단에 쏟아진 끝없는 갈채'(서울=연합뉴스) KBS교향악단은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744회 정기연주회에서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를 공연했다. [KBS교향악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26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는 연주자들로 꽉 들어찼고 객석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평생 실황으로 단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대작이 연주되기 직전, 과연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가 어떤 소리로 들려올지 기대감은 한껏 고조됐다.

마침내 상임지휘자 요엘 레비가 무대로 입장해 지휘대 위에 섰을 때 그의 앞엔 보면대도, 악보도 보이지 않았다. 오선보가 무려 48단에 이르는 복잡한 악보를 완전히 마스터한 요엘 레비는 믿음직스러운 총사령관 같은 모습으로 음악의 대장정을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는 서양 음악사에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지난 2004년에 통영에서 초연된 이후 15년간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른 적이 없다. 악보의 복잡성에 있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능가하고, 표현의 격렬함에서는 바그너를 능가하는 대작을 제대로 연주해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곡을 연주하려면 130명 넘는 기악 연주자와 5명의 독창자·내레이터, 3개의 남성합창단, 8성부로 된 혼성합창단이 필요하다. 연주자를 섭외하는 일도 쉽지 않고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 만큼 KBS교향악단의 이번 연주회는 공연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의 큰 감동까지 전하며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300인에 육박하는 연주자들과 성악가들'
'300인에 육박하는 연주자들과 성악가들'(서울=연합뉴스) KBS교향악단은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744회 정기연주회에서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를 공연했다. [KBS교향악단 제공]
 

연주 시간만 120분이 넘는 '구레의 노래'는 덴마크의 발데마르 왕과 구레 성에 사는 소녀 토베의 사랑이 주제다. 황혼의 태양 빛을 표현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제1부가 시작되자 발데마르 왕과 토베의 사랑 노래가 이어졌다. 토베 역을 노래한 소프라노 강혜정은 특유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토베의 순수한 마음을 잘 담아냈고, 토베가 발데마르 왕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섯 번째 노래에선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사랑의 테마와 소프라노의 음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황홀한 사랑의 기쁨이 잘 전해졌다.

 

독창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노래를 소화해내야 하는 발데마르 역의 테너 로버트 딘 스미스는 모든 노래를 암보로 노래했을 뿐 아니라 다소 중후한 음색에 표정이 풍부한 음성으로 발데마르 왕의 사랑과 고통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하며 공연 내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제1부를 마무리하는 '그대 경이로운 토베여!(Du wunderliche Tove!)'라는 구절은 마치 달콤한 탄식과도 같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제1부 후반에는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마이어가 '산비둘기의 노래'를 부르면서 '구레의 노래'는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음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질투에 사로잡힌 왕비 헬비히가 토베를 죽였다는 소식을 전하는 산비둘기의 처절한 노래는 마이어의 풍부하고 힘찬 음성 덕분에 더욱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휴식 후 연주된 제2부와 3부에서 음악회의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고양시립합창단과 서울모테트합창단, 서울시햡창단이 콘서트홀의 합창석 중앙좌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광대 역의 테너 김승직과 농부 역과 내레이터를 겸한 베이스 알렉세이 보그다노프는 연극배우를 방불케 하는 연기력과 다채로운 표정을 담은 노래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정화하며 전곡을 마무리하는 화려한 '일출' 합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태양을 보라!(Seht die Sonne!)'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합창은 마치 태양이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듯 8성부의 입체음향으로 시작해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 소리와 어우러지며 놀랄만한 음향 세계를 선보였다. 135명의 기악 연주자들과 130여명의 합창단이 함께한 그 풍성하고 화려한 소리는 아마도 '인간의 귀에 허용될 수 있는 최고의 사치', 혹은 '호화로운 음향의 최고봉'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일출' 합창까지 모두 끝나자 관객들은 끊임없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벅찬 감동을 표현했다.

 

지난해 여름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이어 올해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를 무대에 올리며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어우러지는 대작들을 매년 선보여온 KBS교향악단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단지 대작들을 무대에 올린다는 차원을 넘어 완성도 높은 성실한 연주로 음악사상 중요한 작품들을 제대로 연주해내는 KBS교향악단의 야심 찬 무대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KBS교향악단 744회 정기연주회 '구레의 노래'
KBS교향악단 744회 정기연주회 '구레의 노래'(서울=연합뉴스) KBS교향악단은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744회 정기연주회에서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를 공연했다. [KBS교향악단 제공]

herena88@naver.com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7/27 13:5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