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리뷰] [시사매거진] [김준형의 클담] “이것이 바로 축제! 800회 맞은 KBS교향악단“

  •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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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 “이것이 바로 축제! 800회 맞은 KBS교향악단“

 

레스피기 로마 3부작

소프라노 조수미 &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3/28-29)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16

 

 

 

소프라노 조수미,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연주회(사진_KBS교향악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의 오케스트라, KBS 교향악단이 어느덧 800번째 정기연주회를 맞이했다. 명민한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의 리드에 따라 ‘음악의 축제’를 벌였다. 1부, 2부 모두 이들이 쌓은 엄청난 역사를 자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임원식의 지휘로 1956년 명동 시공관에서 제1회 정기연주회를 시작한지 68년 만의 위업이다. 어려움과 시련의 시간이 있었지만 저력을 바탕으로 슬기롭게 이겨냈다. 오트마 마가, 정명훈, 드미트리 키타옌코, 요엘 레비 등 동서양의 거장이 즐비한 역대 상임지휘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소프라노 조수미,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연주회(사진_KBS교향악단)

 

독오 음악에 정통했던 마가의 브루크너와 베토벤 교향곡, 정명훈이 깜짝 발탁한 김남두와 함께 연주한 베르디 <오텔로> 그리고 <레퀴엠>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명연이었다. 러시아의 거장,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부임 역시 화제였다. 그의 러시아 음악을 듣기 위해 일본의 애호가들이 현해탄을 건너기도 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의 말러 <교향곡 제9번>과 엄청난 스케일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의 역동성이 감탄스러웠다.

 

침체에 빠진 악단의 기본을 다지면서 다시 일으켜 세운 레비의 수많은 명연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격동의 시기를 거쳐 2022년부터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잉키넨은 핀란드 출신으로 도이치 방송교향악단(DRP)의 상임지휘자도 함께 맡고 있는 실력파다.

 

 

 

소프라노 조수미,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연주회(사진_KBS교향악단)

 

이날은 연주회의 무게에 걸맞은 세계적인 스타, 소프라노 조수미가 벨칸토 오페라 레토리로 전반부를 장식하기로 계획되어 있어, 각별한 기획으로 기대했으나, 갑작스러운 후두염으로 도니제티 <연대의 아가씨>의 아리아 1곡만 연주하여 못내 아쉬웠다. 소리를 제대로 내기도 어려운 컨디션이지만 갈채 속에 화려한 착장으로 입장하여 연주회에 담긴 개인의 인연과 소회를 관객과 나눈 장면은 역시 대가다운 관록이었다. 비록 확성장치에 의지한 연주였으나 도리어 청중에게 그녀가 지닌 진정한 벨칸토의 빛나는 기교가 낱낱이 전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나 아쉬웠을까? 다시 입장하여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아리랑>을 들려주었다. 울컥한 감동이 밀려온 연주였다.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연주회(사진_KBS교향악단)3

 

연주 전날 프로그램 교체와 협연자 섭외를 능란하게 진행한 사무국의 전광석화와 같은 기획력이 바로 오랜 저력이고, 얼마 전 빈 심포니와 같은 작품으로 투어를 마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안정된 연주도 좋았다.

 

예기치 않은 다리 부상으로 목발에 의지하여 걸음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지휘하며 오케스트라를 이끈  KBS교향악단의 9대 상임지휘자 잉키넨의 기지가 2부에서 빛났다.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을 한자리에서 내리 연주한 드문 광경을 선사했다. 최근까지 경기필을 이끌었던 이태리의 명장, 마시모 자네티가 세 번에 나눠서 모두 연주했고, 거장 무티가 스칼라 필하모닉과 연주했던 <로마의 소나무>가 우리 무대에 올랐던 최상의 장면으로 기억한다.

 

 

 

피에타리 잉키넨,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연주회(사진_KBS교향악단)

 

레스피기 로마 3부작, 축제-분수-소나무

 

<축제>로 시작했다. 천둥번개와 같은 타격음과 금관악기의 합주가 관현악적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남국의 태양이 연상되는 쨍쨍함이 아니라 적절한 페이소스와 비극의 편린이 서려있어 관현악의 묘미를 더 했다. 4악장의 장관은 엇갈리는 리듬의 교묘함을 잘 살려 더 효과적인 서사로 다가왔다. <분수>는 다른 작품에 비해 유달리 유려하고 섬세한 묘사가 필요한데다 서늘한 정서의 표출도 요구되어 고유의 맛을 살리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섬세한 음악을 재현한 현악 섹션의 저력과 선명하면서도 푸근한 목관 앙상블의 합주에 힘입어 작품의 깊이가 유감없이 재현되었다. 은은한 종결부의 여운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소나무>가 자아내는 음향적 쾌감 특히 아피아 가도를 행진하는 로마 군대의 모습을 그린 제4악장은 이 3부작의 백미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단골손님인 잉키넨은 얼마 전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과 브람스 3번에 이어 바그너 <마이스터징거> 전주곡에서 거대한 음향적 스케일을 실감케 해주어 청중을 들끓게 한 바 있다. 이날도 그 화려함과 장관은 압도적. 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자가 최선을 다했지만 이날 연주를 위해 초빙한 클라리네스트, 조인혁의 맹활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악장과 3악장에서 관악 섹션을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완벽한 완급조절로 몽환과 환상을 오가는 연주로 객석을 홀렸다.

 

잉키넨은 상임지휘자 취임 이후 KBS교향악단의 포디엄을 굳건히 지키며 연주 때마다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최근 취입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의 CD도 내놓았다. 올해 만해도 많은 걸작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고 큰 기대를 안겨준다.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1000회, 10000회 이어지길 바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KBS교향악단 800회 정기연주회(포스터_KBS교향악단)

 

 

 

강창호 기자

출처: https://www.sis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3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