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803회 정기연주회
-“올드보이들의 잇단 귀환 돋보이는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들!”
한해의 중반을 턴(turn)하는 시점에 최근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서 지휘봉을 잡는 지휘자들의 면면을 보면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적시하고 싶다.
지난 6월29일 토요일 오후 홀스트 ‘행성’, 작품 32를 지휘한 요엘 레비를 필두로 7월12일(금)에는 KBS교향악단X정명훈의 Choral II로 풍운아 정명훈이 베르디 레퀴엠, 작품 48과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및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미완성’ 연주로 이런 올드보이의 귀환의 바톤을 이어받고 이어 7월18일(목) 저녁에는 70대 중반의 한스 그라프가 슈만의 첼로협주곡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의 지휘로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포디엄에 서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서 이런 올드보이들의 귀환에 선봉에 요엘 레비가 있다는 것은 2010년대 중반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KBS교향악단의 제8대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레비의 역할과 성과를 다시금 성찰케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요엘 레비는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두 차례 연임하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역임했지만 안정화에 기여한 이런 오랜 재임기간에 비해 지휘역량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내게는 빛을 보지못한 면이 많은 지휘자에 속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요엘 레비는 방대한 레퍼토리와 열정적인 무대, 유려한 곡 해석으로 취임 초반에는 많은 주목과 기대를 모았으나 그의 암보지휘는 마지막 재임시절에는 다수의 음악애호가들에게 다소 식상한 것으로 비춰진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목성과 여성합창의 신비로운 분위기, 홀스트 ‘행성’ 연주의 맛 이끌어내”
이번 KBS교향악단이 제803회 정기연주회 메인 프로그램으로 요엘 레비 지휘에 의해 무대에 올린 레퍼토리는 일곱 곡의 교향시로 이루어진 일종의 교향적 모음곡인 〈행성〉으로 매우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고 있는 점에서 레비의 지휘스타일에 부합하는 연주곡이라 그의 귀환무대를 다시 새로금 조명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 요엘 레비의 열정적 무대를 이끄는 스타일과 유려한 곡 해석이 이날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진 40대 후반의 러시아 출신의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한 서울시향 연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 Op.40'와 많이 대비됐다.
홀스트가 원했던 대규모의 사운드는 그가 구성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우주적인 규모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두 대의 피콜로, 네 대의 플루트와 한 대의 알토 플루트, 세 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 베이스 오보에, 세 대의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 세 대의 바순과 콘트라바순, 여섯 대의 호른, 넉 대의 트럼펫, 세 개의 트롬본, 테너 튜바, 베이스 튜바, 두 대의 하프, 첼레스타, 오르간, 그리고 대규모의 타악기 그룹과 현악기. 이 모든 악기들이 그가 원했던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그는 무대 바깥에 위치하는 6성부의 여성 합창을 추가하기까지 했다.
4. 목성, 즐거움을 가져오는 자의 연주에서 홀스트 ‘행성’ 작품 32 연주의 맛을 이끌어내는 레비의 지휘와 또한 마지막 악장 ‘해왕성’에서 마지막 부분에 아무런 가사를 전달하지 않는 여성합창의 목소리를 첨가함으로써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증폭시킨 것은 교향시 홀스트 ‘행성, Op.32' 연주에 대한 음악애호가 감상자들의 체험을 새롭게 하는 것이 됐다.
일곱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모음곡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일곱 개의 행성이 지닌 각각의 특징과 인상을 묘사하고 있다. 행성들에 대한 부제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곱 개의 악장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는 것인데 생동감 넘치고 리드미컬한 악장들이 그 중 하나의 유형이고, 나머지 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고, 마치 시공을 초월한 듯한 별들의 움직임에 대한 조용한 명상이 그것이다. 전자에 속하는 악장 중 대표적인 것은 번개가 치듯 번쩍이는 듯한 ‘화성’ 악장이 대표적일 것이며 또한 이름에 어울리듯이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는 ‘수성’, 실제 민요가 쓰이지는 않았지만 잉글랜드 민요풍으로 작곡된 ‘목성’도 전자의 유형에 속하는 곡들이다. 반면 ‘금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은 매우 명상적인 부분을 담고 있음을 요엘 레비 지휘의 KBS교향악단 연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예전 무곡 지휘의 귀환무대에서 레비의 무곡 지휘에 강한 면모 애호가들에게서 시선!”
최근 몇 년간 요엘 레비의 KBS교향악단과의 귀환무대에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공연으로는 지난 2021년 9월17일 추석 직전 KBS교향악단 제770 정기연주회 요엘 레비의 귀환 무대로서 “요엘 레비의 백조의 호수”가 열렸던 것은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 시절 그의 공과를 되쇄기는 계기가 됐다.
KBS교향악단과 함께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말러 9번 교향곡을 실황 녹음하기도 해서 요엘 레비의 귀환 무대 치고는 프로그램이 다소 빈약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요엘 레비의 <백조의 호수> 발췌곡 지휘연주는 그의 예전 KBS교향악단과의 정기연주회에서의 거의 모든 곡 지휘에서 암보에 의한 유려한 곡 해석의 지휘를 볼 수 있는 예전의 향수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추석 전야라서 그런지 요엘 레비의 귀환 무대 치고는 관객이 적었고 직전 769회 정기연주회 개릭 올슨이 슈만피아노협주곡을 협연했던 정명훈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무대보다도 열기가 적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I. Scene 연주는 요엘 레비의 귀환무대의 레퍼토리 성격상 비중이 떨어지는 곡이 선정된 것 같아서 아쉬움을 주었고 II. Valse는 KBS교향악단의 연주력이 투박하다면 라이벌 서울시향의 연주는 정교하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싶은 연주였다. III. Danse des cygnes 연주는 성큼 연말이 다가온 느낌을 줬고 IV. Scene은 백조의 호수 발레 무대가 그려졌다. 요엘 레비의 귀환 무대에 어울리게 VIII. Mazurka 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떠들썩하게 앵콜곡도 화려하게 연주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요엘 레비의 귀환 무대는 앵콜곡없이 다소 싱겁게 끝났고 이번 803회 KBS정기연주회에서도 요엘 레비의 귀환무대를 화려하게 뒷받침해줄 앵콜곡의 향연은 없어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2년전인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저녁 올해와 마찬가지로 한해의 반을 턴(turn)하는 시점에 KBS교향악단 제779회 정기연주회 <교향적 무곡> 무대에 오른 요엘 레비는 수미상관(首尾相關) 격으로 전반부에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과 후반부 이날의 메인 연주곡이 됐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op 45 지휘로 무곡 지휘에 새삼 빛을 발하는 요엘 레비의 유려한 곡 해석이 KBS교향악단 연주회 애호가들에게서 시선을 끌었다.
요엘 레비 지휘의 KBS교향악단 연주에 의한 추억에로의 소환은 이날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브람스/헝가리 무곡4번 올림바단조(파울 유올 편곡)의 연주곡에서 정점을 맞았지만, 요엘 레비의 무곡 지휘에 강한 면모는 그의 작품이 버르토크에 비해 인상파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파리에서의 생활을 반영한 듯 다채로운 색감이 두드러진다는 코다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갈란타 무곡’에서부터 발현되기 시작했다.
KBS교향악단의 연주자들에게도 이날 공연에서 도전의 시작을 의미했을 갈란타 무곡의 음악은 템포의 변화가 심한 가운데 서로 다른 분위기와 리듬을 가진 4개의 무곡이 끊기지 않고 연주되는 구성이다. 도입부에서 집시풍의 선율이 첼로에 의해 제시되고 호른이 강하게 이어받는다. 이 선율은 다양한 악기로 다루어지고 클라리넷에서 헝가리의 민족적 정서가 짙게 밴 첫 번째 무곡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 무곡의 주제는 독주 플루트의 음색에 의해 이국적인 스타일로 펼쳐지며 첫 번째 주제가 브릿지로 역할을 하여 템포의 완급 변화로 세 번째 주제에 연결된 곡은 오보에의 음색으로 시작하여 목관 중심의 사랑스럽고 소박한 분위기의 무곡으로 꾸며진다. 열광적인 고조를 보이는 마지막, 네 번째 무곡은 과거의 에피소드를 부분적으로 회상하고 당김음에 의한 옥타브 도약 하강 소리 형으로 순식간에 곡을 마치는 것이 요엘 레비의 스타일에 매우 부합하는 춤곡풍의 지휘였음을 보여주는 첫 곡의 연주였다.
후반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작품45에서도 요엘 레비의 무곡에 강한 지휘 모습은 기괴하고 변화무쌍한 화성과 강렬한 리듬, 러시아적인 생동감이 넘치는 이 걸작의 지휘로 다시 한번 예각을 드러냈는데 특히 찬란한 관현악의 색채를 만끽할 수 있는 부분인 3악장의 연주가 내게 2년전 당시 그러했던 감흥을 전달했던 것 같다.
지난 6월29일 토요일 오후 예술의 전당에서 가진 제803회 연주회에서 KBS교향악단은 전반부 연주에선 슈완트너, 세계를 위한 새 아침, “자유의 여명” 연주로 ‘우주 안에 하나의 인류’를 주제로 분열과 고립, 전쟁과 상처, 대립과 공포로 얼룩진 인류를 향해 회복의 가능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나레이션으로 들려줬다.
글: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출처: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