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클래식感]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과 그를 사랑한 남자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는 63번째 생일을 맞기 직전인 1887년 8월에 새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완성되면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과 같은 아홉 번째 교향곡이 될 곡이었다. 작업 중 그는 건강이 나빠졌다. 브루크너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마지막 교향곡을 존엄하신 하나님께 바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이 준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앞의 세 개 악장은 7년이나 걸려 완성했지만 마지막 4악장은 자주 작업이 중단됐다. “만약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끝난다면 세 개 악장 뒤에 내 ‘테 데움’을 연주해주기 바랍니다.” 브루크너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테 데움은 그가 1884년 완성한 찬미가, 즉 신을 찬양하는 내용의 합창곡이다. 브루크너는 1896년 10월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그가 사랑하는 신 옆으로 갔다.
한 세기 뒤 브루크너의 음악을 매우 사랑한 음악 칼럼니스트가 한국에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박진용이었다. 그의 책 ‘브루크너, 완벽을 향한 머나먼 여정’에는 그가 이렇게 소개돼 있다. “대학 시절 활동했던 고전음악 감상 동아리에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여러 매체에 클래식 음반 리뷰와 다양한 음악 관련 기사들을 기고했다. 바흐, 베토벤, 브루크너의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열렬한 팬이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에 대한 그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다. 앞에 소개한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C장조인 ‘테 데움’을 D단조인 교향곡 9번과 연결해서 연주한다는 것은 어색하다. 브루크너는 왜 이 작품의 피날레로 ‘테 데움’을 고집했을까? 베토벤이라는 선배 작곡가의 그림자를 읽어낼 수도 있다. 브루크너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모두 D단조이고, ‘테 데움’이 4악장을 대체하면 거대한 합창부를 포함하는 공통점도 생긴다.” 박진용이 이 글을 읽으면 ‘내 생각도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은 그가 쓰지 않았다. 이 글은 그의 대학 후배인 음악 칼럼니스트 이명재가 썼다.
박진용은 1999년 압구정동에 중고 클래식 음반 가게인 ‘서푼짜리 레코드’를 열었다. 체구가 크고 매력적인 저음을 가진 그를 실제보다 많은 나이로 본 단골도 많았다. 수많은 음반이 흘러들고 흘러나간 뒤 ‘서푼짜리 레코드’는 문을 닫았고 주인은 예전의 직장인 생활로 돌아갔다. 그가 38세 때인 2004년 6월의 어느 밤, 박진용은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했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0년이 흘러 그의 대학 동아리 선후배들은 그를 추모하는 유고집을 내기로 결정했다. 타계 당시 박진용은 음악 전문지에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을 분석하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었고 연재는 그의 타계로 교향곡 5번에서 중단됐다. 교향곡 6∼9번의 분석으로는 마침 그와 엇비슷한 시기에 브루크너 교향곡 총론을 쓴 이명재의 글이 있었다.
박진용 음악칼럼집 ‘브루크너, 완벽을 향한 머나먼 여정’(리수)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되는 2014년 6월 24일 세상에 나왔다. 두 사람이 쓴 브루크너 교향곡 총론 외에 전설적 연주가들에 대한 짧은 평전들도 실렸다. 이 책이 나오고 10년이 된 올해는 박진용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교향곡 대가 안톤 브루크너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박진용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처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도 결국 ‘완성된’ 교향곡이 됐다. 브루크너는 이 곡의 4악장을 마치지 못했지만 남은 스케치에 번호를 적어 이 미완성 악장의 전개를 상상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1980년대 이후 이 스케치들을 연결해 완성하려는 시도들이 나왔고 ‘4개 악장으로 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도 이제 세계 콘서트홀에서 종종 연주되고 있다.
KBS교향악단은 7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804회 정기연주회 ‘당신의 때에 나를 부르소서’에서 한스 그라프 지휘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 음악학자들이 완성시킨 4악장이나 ‘테 데움’은 이날 연주하지 않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출처: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701/125718057/1